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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가지 마라: 당신의 개가 당신을 보는 방식

구름산신작가 2021. 10. 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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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40세 이후 스타트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 중, 아직 '잘 나가던 시절의 단꿈'에 빠져 정신 못 차리는 인간들을 예상 독자로 생각하고 쓴 글임을 밝힙니다. 그런 인간들은 대체로 '망할 거면 혼자 망하지 엄한 젊은이들 경력까지 망치는 지뢰'이기 때문에 교훈을 주려는 것입니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대부분의 건전한 대한민국 창업자들께는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냅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메타 인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메타 인지란 예컨대 쇼핑몰에서 물건을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나 자신, 정신없이 야식을 먹고 있는 나 자신, 그런 나 자신을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어느덧 쉰을 넘긴 나이가 됐다. 고령화네 어쩌네 해도, 특별히 정계로 진출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사회적으로는 이미 다 산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에 종종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나이보다 훨씬 어린 취급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열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흥미롭다고 느낀다. 인문학적으로나 인지학적으로.

내가 몇 년생인 줄 뻔히 알면서도 나를 어린이 취급을 하는 사람들은 사실 자기 자신을 산송장이나 꼰대 취급하는 것과 똑같다. 쉰을 넘긴 사람을 어린애라고 보는 사람이라면 갈 곳은 오직 경로당밖에 없다. 그런데 자신을 더 어른스럽다고 생각하느라 스스로를 그런 위치에 포지셔닝시킨다는 점은 전혀 생각지 못한다. 메타 인지가 없다.

그런 사람들 중엔 대기업이나 은행에서 임원직을 지냈던 이들이 많다. 아, 공무원 출신들도 있다. 

남들이 다 알만한 직장에서, 오랜 세월 한 직종에 근무하면서,  나름 높은 자리까지 올랐던 사람들은,

 

평생 여러 직장과 직종을 전전한, 강사나 프리랜서 혹은 개인사업자를 무시한다.

 

높은 빌딩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던 자신들과 달리,

 

여러 빌딩의 1층을 별 볼일 없이 돌아다녔다 이거다.

 

자신은 교육부 장관을 지냈으니

 

영어학원 원장조차 하지 못하고, 여러 학원을 돌아다니며 일하고, 과외 선생도 하고 공부방 선생도 한 그런 사람들이 뭘 알겠느냐 하는 거다.

하지만 중고 물건 가게에 가면 사장님 책상이건 회장님 책상이건 애들 공부용 책상이건

 

다 얼마 안 한다.

 

회사에서 뺀 중역 책상이나, 동네 아파트에서 뺀 애들 공부 책상이나 거기서 거기다.

잘난 시절을 살았던 이들은 발끈할지 모른다. "야 그래도 내가 경험과 인맥이 있어"라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들의 경험은 한 가지 일에 대한 경험이고 그나마 중반 이후부터는 현장 경험도 아니다. 

 

아직도 빌딩 꼭대기에 있는 게 아닌데, 1층으로 내려왔으면 버스도 타야 하고, 지하로 내려가 지하철도 타야 하는데.

 

자가용 타고 빌딩 꼭대기까지 엘리베이터 타던 시절은 자신이 폐기 처분되기 전까지의 얘긴데.

전국을 도는 물류 택배 기사와, 그 회사의 이사 중 누가 더 경험이 풍부한지는 따져봐야 결론이 난다. 

만약 물류 회사에서 이사로 있다가 잘린 뒤 하다못해(?) 배달 앱 회사라도 차리려면 단순히 대기업 이사를 하며 얻은 경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물론 돈이 무한정 많다면 그땐 가능하겠지. 까짓것 다 돈 주고 시키고 몇 번 들어먹더라도 다시 하면 되니까. 그런데 물류 회사 월급 이사하면서 모은 돈이 한 몇 백억 되나? 택배기사 + 차량 10세트만 쓴다고 해도 한 달에 나가는 돈만 얼만데? 일 년엔? 순식간에 강남에 사둔 아파트 몇 채 날리는 건 일도 아니다.

그리고 인맥 자랑을 하는데, 그래 나이가 있으니까 주변에 회장이니 대표니 하는 사람들 몇은 있겠지.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들도 은퇴 준비하고 있다는 거. 또 그런 분들은 본인이 계속 사업 일선에 있더라도 쌩쌩한 젊은 애들이랑 해도 뭘 하지 비슷한 나이의 폐품들이랑은 상종하기 싫어한다는 거. 물론 티는 안 내지만.

카페에서 글 작업하다 보면 그런 중장년층 부지기수로 본다. 아니, 카페에 모인 중장년층은 거의 대부분 그렇다. 그들의 대화에는 상당한 거물들이 나온다. 자신감과 패기도 젊은이들 못지않다.

그런데 정말 신기할 정도로 공통적으로 그들이 계산에 넣지 못한 게 딱 하나 있다. 바로 '시간이 흐르고 있다'라는 것. 삼 년 뒤엔 환갑인 사람도 있고 오 년 뒤엔 칠순인 사람도 있다. 어디 나이뿐인가. 나이는 숫자가 아니다. 나이는 몸이다.

오전에 수영을 가면 은퇴한 아저씨들, 큰 형님뻘 되는 분들을 종종 본다. 그들 중엔 정말 대단한 경험, 스펙터클한 인생을 사셨던 분들도 꽤 있다. 단순한 대기업 임원이 아닌, 중동에서 시작해 개성공단까지 정말 풍운아처럼 살았던 양반들. 

"보통 한 7년 정도 걸려. 다 포기하고 건강이나 챙기자 싶어 등산 다니는 데까지."

그분의 큰 형님은 학교 교장선생님까지 했는데 나중에 사립학교 '바지 교장'으로 스카우트되었단다. 그때 받은 월급이 아파트 경비 아저씨보다도 적은 금액이더란다. 자괴감이 상당하셨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바지 교장한테 왜 아파트 경비보다 더 많은 월급을 줘야 하나.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동네 버스 정류장 근처 낡은 상가 한 귀퉁이에서 분식집을 하는 비슷한 나이 또래. 그는 얼마를 벌까. 낡은 상가라 임대료가 싸고 오래된 곳이라 단골이 있다면, 적어도 실제로 목도하고 있는바 월 매출이 천만 원대다. 아, 인생은 그렇게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되는 것인가. 목 좋은 곳에서 하는 '빤쓰' 장사가 신도시 새 빌딩 5층에 있는 벤처 회사보다 돈을 더 번다.

물론 1층 빤쓰 가게도, 5층 벤처 회사도 없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조차 1층 어디가 장사가 잘 되는지, 어느 신도시 빌딩이 잘못 들어가면 몇 년 뒤 번개탄 피워 놓고 자야 하는지 안다. 그게 1층 살이들의 힘이다. 뚜벅이기에 얻을 수 있는 정보와 경험의 힘.

당신이 만약 중장년층이라면 스스로를 폐기장에 버려진 구형 로봇으로 볼 수 있는 메타 인지가 필요하다. 휴머노이드 사이보그 시대의 구가다 기계 로봇. 바로 그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몇 년 젊은 앞에서 똥폼 잡다가 들어먹고 끝나지 않으려면. 

"그런 마인드로 뭘 어떻게 도전하겠어!"라고 한다면 아직 당신은 정신을 못 차린 거고, 따라서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 

당신이 그 나이에, 그 처지에 해야 할 것은 도전이 아니라 우아한 에필로그다. 또는 자신만의 소일거리. 물론 그 에필로그와 소일거리가 조금 스케일이 있을 순 있겠지. 

빌 게이츠가 지금 다시 태어나면 또 한 번 빌 게이츠가 될 것 같나? 스티브 잡스가 다시 태어나면 또다시 스티브 잡스가 된다고? 나폴레옹이 다시 태어나면 또다시 나폴레옹이 되고? 같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도 똑같은 성공을 이루고 살 수 없는데, 하물며 그 나이, 그 몸에? 그 정보와 그 경험으로? 그래, 뭐든 못하겠나. 하지만 시간은 엄중하게 흐른다. 왜장을 끌어안은 논개처럼 당신을 꽉 끌어안고 세월의 강으로 뛰어든다.

당신은 당신의 개 앞에서 옷도 갈아입고, 이성과 사랑도 나누고, 오만 짓을 다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영리한 사냥개를 길러본 바, 당신의 개는 당신을 뜻밖에도 상당히 높은 인지의 수준에서 바라보고 있을 수 있다. 당신의 개는 당신이 사생활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어떤 인간인지 다 안다. 

메타 인지가 없다면 당신과 당신의 개는 동등한 눈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볼 것이다. 아니, 만약 꽤 영리한 녀석이라면 오히려 당신의 개가 당신을 메타 인지의 수준에서 관찰하며 마음속으로 평가하고 있을지 모른다.

자신이 개라는 것을 아는 개와, 자신이 사람이란 걸 잊은 사람 중 어느 쪽의 메타 인지가 더 높은 관찰자일까? 자신이 이젠 폐품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과거의 고층 빌딩 사람과, 처음부터 폐품을 뒤져 중고나라에 팔아먹고 산 사람 중 누구의 생존율이 높을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지만 적어도 과학에서는 메타 인지가 높은 쪽이 생존율도 높다고 한다.

남들 강아지로 보는 거 까진 좋은데, 너무 주접은 떨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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