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앨버트 허시먼의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구름산신작가 2021. 8. 2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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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B급 독후감이자 비정상 문학평론이다. A급 정상적인 독후감을 찾는 분들은 딴 데 알아보시라.

 

나에겐 희한한 초능력이 있다. 여기서 초능력이라 함은 농담 반 진담 반이다. 나는 사람이든 조직이든 항상 전성기를 지나 이른바'끝물'일 때 만난다. 물론 가끔은 끝물일 때 더 맛이 나는 경우도 있다. 겨울이 오기 전 가을 단풍이 아름답듯이. 촛불도 꺼지기 직전 크게 타오르듯이.

 


아무튼 나는 이 희한한 운명(혹은 인연)의 원인을 대략 파악하고 있다. 그건 내 속도나 성향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들이 다 좋아하는 신작 영화가 개봉을 했다고 치자. 남보다 조금 느리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걸 싫어한다면 당연히 영화가 거의 극장 상영을 끝낼 무렵에 보게 될 것이다. 설치고, 빨빨거리고, 호기심이나 욕망에 바로바로 대응하는 성격이 아니라면 전성기가 아닌 끝물의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와 인연이 닿게 된다. 

 

 

당신이 싱어송라이터고, 아이돌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거대 콘서트장 같은 장소에서 음악 듣는 것을 싫어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훗날 전성기가 아닌 중년이 된 아이돌과 음악 작업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 술 더 떠 당신이 포크송 하나만큼은 히트곡 제조기라면, 당신과의 작업을 파토 낸 그 왕년 아이돌 출신 가수는 다른 작곡가와 작업을 하다가 실패를 맞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 가수의 꼴값을 못 견뎌 떠났어도 결과는 똑같다.)

 

따라서 "이상하게 난 꼭 전성기를 지난 장소를 방문하던가, 전성기를 지난 누군가를 만나게 돼. 그리고 내가 떠나면 꼭 그 장소는 문을 닫고, 그 사람은 실패를 하더라고'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다.

 

 

'날 떠난 학생은 대학에 떨어지고, 내가 떠난 회사는 얼마 못 가 문을 닫더라'라는 것도 알고 보면 대단한 신비가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내 몸값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생기는 일일 수 있다. 

 

예컨대 당신이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했으나 어떤 이유로 한국의 머나먼 섬마을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고 하자. 그런 곳에서 당신 같은 수준의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 확률은 사실상 없다. 그런데 당신이 그 섬마을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오죽하면 저 놈도 여기까지 왔겠어'라고 생각한 마을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당신을 무시한다고 치자.  그 섬마을 사람들과 학생들은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거다.

 

당신이 대한민국 최고 실력자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50킬로미터 이내에서는, 더구나 고액의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못 되는 학생들에게는 정말 어딜 가도 당신 같은 선생을 찾으래야 찾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 사람을 못 알아보고, 그렇게 당신에게 함부로 대하다가 결국 당신이 더 이상 못 견디고 떠나면 그들 모두는 안된 얘기지만 원래 그들이 있어야 하는 자리, 그 계급을 넘어설 기회를 다시 찾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번엔 당신이 구글 본사에서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를 이끌던 임원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런 당신이 어떤 운명의 장난으로 한국에 돌아와 신생 IT 업체에서 실장으로 일하게 되었다고 치자. 보아하니 나름 어린 사원들도, 물론 구글 본사와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나지만, 그래도 성실하고 착하고 좋은 젊은이들이다. 그런데 회사 대표가 갑질에 꼴값에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한 당신은 사표를 내고 회사를 관둔다. 이런 경우 실력도 없으면서 유니콘 기업이 되겠다는 욕심만 부리며 사장은 99.99 퍼센트 망하거나, 투자자들한테 사기죄로 고소당하던가, 둘 모두가 되던가 한다.

 

여기엔 그 어떤 신비나 초능력도 필요치가 않다. 그냥 점심 내기로 사다리 타면 그 길을 따라 쭉 내려가는, 하나의 테크 트리를 타면 당연히 인과관계로 기다리고 있는 결과를 맞는 것일 뿐이다. 예외가 있을 수 있다지만, 오히려 현실에서는 예외가 없다. 오직 시간이 조금 더 걸리냐 덜 걸리냐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 이런 일은 굉장히 많다. 강호에는 엄청나게 많은 고수들이 있으며, 당연히 받아야 할 대접에 훨씬 못 미치는 대접을 받는 사람들 또한 널리고 널렸다. 당장에 사립 고등학교 교장까지 한 분이 아파트 수위를 하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국가대표까지 한 운동선수가 지방의 작은 중학교 운동부 코치를 하는 경우는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이다. 대리기사한테 술 먹고 주접떨다가 뒤질 뻔하고 나서 그 기사가 전직 종합격투기 선수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런 식의 일은 인생사에서 매우 흔하게 벌어진다. (멍청이들은 이 말의 취지를 모르고 '난 그런 적 없는데'라며 또 잘난 척을 하겠지만.)

 

이건 간혹 학생들 앞에서 '내가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데'라는 망언을 하는 교사들과는 다른 얘기다. 보통 강호의 고수 뱃사공들은 오히려 남들보다 맡은 바 의무에 최선을 다하며 겸손하다. 자신의 잘 나가던 과거를 마구 떠벌리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속물 절어있는 자칭 '대표'라는 것들은 이런 숨은 고수들에게까지 갑질을 한다. 정작 그 고수가 떠나고 나면 잠시 뒤 북두신권에 혈을 눌린 건달 꼴 날 것은 자기 자신과 자기 회사인 줄 모르고.

 

 

자, 이제 앨버트 허시먼의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원제를 보면 「Exit, Voice, and Loyalty: Responses to Decline in Firms, Organizations, and States」, 책의 내용에 맞게 의역하면 「탈출, 발언, 그리고 충성: 회사, 단체, 그리고 국가의 쇠퇴에 대한 대응」 정도가 되겠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 맛이 간다, 혹은 갔다'라고 판단될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이야기한다. 탈출하는 사람과, 직언을 하는 사람과, 묵묵히 함께 가는 사람, 이 세 가지로 나뉜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첫 번째가 가장 지혜로울 것이다. 자고로 '똑똑한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틀고, 지혜로운 선비는 군주를 가려서 섬긴다'라고 하지 않나. 멍청한 리더 때문에 몸 망치고, 가문 망치고, 그렇다고 나라가 망하는 걸 막지도 못하는 상황을 우리는 너무도 많은 사례를 통해 알고 있다. 

 

 

반면 리더 입장에서는 마지막 부류, 즉 묵묵히 함께 하는 사람들을 가장 좋아한다. 그러면서 두 번째 부류인 직언을 하는 사람도 되라고 한다. 하지만 직언을 하면 돌아오는 건 '내가 왜 그렇게 하는지 아니?'로 시작하는 대한 길고 긴 훈화 말씀이다. 대부분의 리더들은 그 어떤 조언도 듣지 않는다. '그 정도는 나도 생각했어. 너 몰랐지? 내가 그런 거까지 다 생각해서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리더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맞다. 그런 유아독존 마인드 플러스 직접 할 줄 아는 게 없는 인간들이 보통 리더를 한다. 남을 이용해 자신의 배를 불리며 끊임없이 잘난척하고 싶어 하는 부류의 인간들이 보통 리더를 한다. 리더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인간들은 거의 다 리더를 한다.  

 

이런 이유로 위에서 언급한 하버드 출신의 섬마을 선생님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두 번 직언을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섬을 떠난다. 그러면 모든 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에너지가 제로인 평형 상태로. 10년 뒤 IT 기술과 로봇 기술로 자동화된 양식업을 진행해 특산품 수산물을 온라인으로 수출까지 할 수 있는 가능성은 평행 우주 다른 한쪽으로 사라지고, 섬에는 노인만 남게 된다. 젊은이들은 그 섬에서 제일 가까운 뭍의 항구도시에서 별 볼 일 없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나마 이건 가상의 낙도, 고립된 먼 섬마을 이야기라 이 정도에서 끝나지 회사라면 금융사고 터뜨리면서 처참한 파국을 맞게 된다. 사기가 별건가. 결과보다 말이 앞서고, 수익보다 투자가 앞서다가 뜻대로 안 되면 그게 사기지. 아무리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었는데'라고 하면 뭐하나. 

 

 

수미쌍관 하여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간다면 그간 개인적으로 '한 때 잘 나갔으나 지금은 마지막 기회에 처한 개인과 회사를 꽤 만났다. 둘 다 전문가라 모신답시고 사람 불러들여놓고, 정작 컨설팅을 해주면 듣는 둥 마는 둥. 바라는 건 전혀 다른 쪽, 예컨대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정도가 아닌 야매로 이룰 수 있을지나 물어보고. 어떻게 하면 다른 충성하고 있는 직원들 야근수당 안 주고 일 더 시킬까, 어떻게 하청업체 돌려 까서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잔머리만 쓰고.  

 

전문가가 왜 전문가인가. 어떻게 해야 잘 되는지, 어떻게 하면 망조가 나는지 남들보다 잘 아는 게 전문가 아닌가. 일단 해줄 수 있는 거 성실하게 해 주다가 선을 넘는다 싶으면 직언을 몇 번하고, 그러다 끝내 안 받아들여지면 떠난다. 그러고 나면 한 번도 빠짐없이 그들은 다 망조가 들었다. 희한한가? 생각해보면 하나도 희한할 일이 아니다. 요새는 세상이 빨리 돌아가서 그런지 망하는 것도 광속으로 망하더라. 자고로 어르신들 말씀하시길, '날씨 궂은날 벼락 맞을 놈 옆에 있지 마라'라고, 괜히 싹수 안 보이는 회사에서 애매한 관리직 맡고 있다가 잘못하면 대표나 이사가 싸지른 똥 대신 뒤집어쓰고 조사받으러 다니는 수가 있다. 아니면 대표랑 이사가 나란히 출근을 안 한 어느날, 투자자들이 쓰나미처럼 몰려들어 멱살 잡히는 험한 꼴을 당하던가. 

 

 

앨버트 허시먼은 그의 「저서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에서 ‘이탈(exit)’과 ‘항의(voice)’, '충성(loyalty)' 중 어떤 레시피가 정답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있다. 적어도 회사에서 팀장 이상 자리에 앉아 있다면 항의라는 절차를 거친 뒤 이탈을 하는 게 최선이라고.

 

P. S. 사실 팀장급도 스트레스로 심각한 병에 걸리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탈출하는 게 답이긴 하다. 본인 능력이나 결심의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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