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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고? 1980년대를 추억하는 나만의 방식!

구름산신작가 2021. 2. 16.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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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나랑 띠동갑 정도 되는 한 블로거가 쓴 80년대 예찬을 읽었다.

80년대를 '비록 군사독재는 있었지만 일반인들은 특별한 억압을 느끼지 못했던 시대' 또, '중산층이 두터웠던 오히려 살기 좋았던 시절'로 회고(?) 했다. 그렇게 따지면 일제시대인들 딱히 불편한 게 있으랴. 역사상 그 어떤 시대라도 본인의 의식만 셧다운하면 쁘띠-부르주아로 살아가는덴 별문제 없다. 체제에 저항만 하지 않으면...

채 10살도 안된 아이의 시선이어서 당시엔 80년대를 그렇게 느꼈을 수 있다. 나도 그들 방식으로 70년대를 기억해 보면 '유신의 폭압'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ㅡ,.ㅡ (너무 당연하잖아? 조선시대에 백정의 자식으로 태어나도 아버지의 소 잡는 모습에 매력과 낭만을 느꼈을 그런 나이인데!) 하지만 20세를 넘어선 그들이 아직도 10살 때와 같은 생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보통은 성장하면서 자신이 속했던 시대를 비판한다. 그 비판은 지나온 시대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더 사랑하기 위해..

그들은 또 80년대의 주인공이 386세대가 아니라고 했다. (당시 10살 미만의 자신들이 더 주인공에 어울린단다.) 이유는 제법 그럴듯하다. 386세대는 80년대를 그리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추억함과 사랑함을 구분 못하는 게 아닌가. ㅡ.ㅡ;;

나의 아버지는 '조'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신다. 625 때 너무 드셔서 그러시단다. 어쨌든 그거라도 질리게 드실 수 있었던 건 행운인 편이라고 말씀은 하시면서도.. 한 번은 어머니가 정부에서 하도 혼식을 강요하니까 좁쌀을 섞어 밥을 지으셨다가 아버지께 한 소리 들으신 적이 있다. 지금까지 아버지가 식탁에서 그렇게 노발대발하신 건 딱 그때 한 번뿐이다. (아니, 생각해보니 한 번 더 있구나. ㅋ) 그만큼, 정말 이성적으로 컨트롤 안될 만큼 아버지의 지나간 시절은 아픔이었던 것이다. TV에서 나오는 '맛집' 프로그램을 보거나 혹은 택시,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과거를 그리워하는 어르신들의 맛, 취향, 추억 등을 종종 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분들 중 어느 누구도 정말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갈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속으론 다들 지긋지긋해 한다.

과거를 추억하는 건 이미 그곳을 떠나왔고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추억한다고 다 재방송을 원하는 건 아니다. 더구나 본인이 극중 인물로 돌아간다는 건. 어른들은 종종 모순된 얘기를 한다. 살다 보면 그렇게 된다. 삶이 모순되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추억한다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또 지긋지긋해 한다고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란 말이다. 전자가 첫사랑이라면 후자는 지금 한이불 덮고 사는 마누라에 대한 감정 같다고 나 할까? 더 나은 미래를 갈망하기에 현재는 지겹다고 푸념하는 것이고, 반면 과거는 이미 어쩔 도리가 없이 지난 것이기에 역사에 대한 예우(?)로 그때가 그립다고 이야기하는 것일 뿐. 그런 걸 이해 못하는 애들과 일부 철없는 어른들 덕분에 '전두환 때가 그래도 서민들 살기엔 좋았다'라는 용가리 똥침 맞는 소리가 전해 내려오는 거 아닌가.. 허기야 박정희도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을 꽤나 그리워했다지?

아무튼 그 철없는 80년대 예찬을 댓글까지 다 읽고 나서 한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괜히 아이들 노는데 끼는 거 같아서 관뒀다. 내가 훈계할 입장도 아니고 그런 애들 일일이 가르치고 지나갈 만큼 인생의 행보가 여유로운 것도 아니다. 인생이란 게 정말 치매 오기 전에 철들기도 바쁘잖나.

한 댓글에선 올림픽 이후 부동산 열풍으로 압구정동에 졸부들이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세대의 단절>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강남 개발은 이미 70년대 말에 시작되었고 80년대가 아닌 80년도, 즉 1980년 이미 발 빠른 사람들은 강남으로 죄다 이사를 온 상태였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전문직 종사자들이나 대기업 과장급 이상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오늘의 강남을 이룬 사람들이고 강남 땅값은 그렇게 이미 80년대 초부터 상승기류를 타고 있었다. 우리 집도 80년대가 되기 전 이미 반포동, 논현동을 돌다가 정확히 1980년에 서초동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이후 1990년 6월까지 정확히 10년을 그곳에서 살았다. 난 강남역과 서초동 유흥가 발달사의 살아있는 증인이다. ㅠ.ㅠ

소위 3S로 불리는 스포츠, 섹*, 스크린(영화) 사업이 부흥했고 반면 국가의 주요 사업들, 예컨대 국방산업 같은 건 미국에 아부하기 위해 알아서 접던 때였다. 서초동(그러고 보니 서초동도 이니셜 S! ㅡ.ㅡ)은 그 3S를 대표할 수 있을 만큼 극장과 유흥업소가 많았고 그래서인지 동기들과 초등학교(혹은 동네) 후배들 중엔 연예계로 들어선 애들이 꽤 있었다. 웃긴 건 다들 내가 젤 먼저 방송 탈 줄 알았단다. 하지만 난 결국 연예인이 아닌 예술가가 되었다. 살았을 때 보다 죽고 나서 더 인기 끈다는.. ㅜ.ㅜ



우린 '틴에이저' 동안 80년대 전체를 가로질렀다. 컬러 tv, 사이비 젊음의 축제 국풍 80 시리즈, 프로야구, 두발-교복 자율화, 아시안-올림픽 게임 등이 있었다. 다른 한편엔 광주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지금은 맛이 달라진(?) 박노해 시인, 조폭 부럽지 않은 가문의 영광 전두환-전경환 브라더스, 대입 학력고사 100만 동기들..

우린 '틴에이저' 동안 80년대 전체를 가로질렀다. 컬러 tv, 사이비 젊음의 축제 국풍 80 시리즈, 프로야구, 두발-교복 자율화, 아시안-올림픽 게임 등이 있었다. 다른 한편엔 광주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지금은 맛이 달라진(?) 박노해 시인, 조폭 부럽지 않은 가문의 영광 전두환-전경환 브라더스, 대입 학력고사 100만 동기들..

요사이 들어선 '나도 이제 나이가 꽤 들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세대 간의 단절을 느끼기도 하고, 미성숙한 젊은 애들의 덜떨어진 과거 예찬에 기분이 상해도 머릿속에 더 오래 남는 건 불쾌감이 아닌 그들의 젊음인 걸 보면.. 이따금 '젊은 모습으로 한 100년만 쭉-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럴 수 있다면 왠지 꿈꿨던 모든 걸 적어도 다 시도는 해볼듯싶어서. 그러나 막상 영원한 젊음을 신으로부터 선물 받아도 할 놈은 하고 안 할 놈은 끝까지 아무것도 안 하겠지.. 혹시라도 누가 다시 젊은 시절로, 그러니까 20대 초반으로 정말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난 확실하게 '그럴 생각 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 Young & Stupid 이란 말이 있다. 젊을 땐 정말 젊다는 거 하나 빼곤 아무것도 없다. 생각도, 돈도, 경험도.. 그래서 젊은 시절은 그렇게 휙 지나가고 만다. 체 게바라 같은 특수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대체로 젊음 그 자체는 별로 남는 장사가 아니다.

마흔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한다. 성숙하게 잘 늙는 게 중요하단 말이다. 연예계 뉴스를 보면 다이어트와 성형으로 젊음을 유지하는 배우들이 종종 이슈가 된다. 물론 그들에겐 외모가 먹고 사는데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고, 또 팬들의 눈 높이에 맞추려다 보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어쩐지 그들의 노력은 안쓰럽게 느껴지고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경우 여자 남자 상관없이 젊어 보이는 것보다 성숙하게 늙어 가는 게 훨씬 현실적이고 또 중요하다. 나도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편이지만 살면서 그게 그리 중요한 것도, 자랑할 것도 아니란 걸 배웠다. 젊음이 현찰이면 경륜은 보석과도 같은 것이기에 차라리 나이에 걸맞은 성숙함과 품위를 갖추는 게 여러 가지로 낫지 싶다.

어느덧 그렇게 난 심각하고 재미없는 아저씨가 되었다. 현재의 내 모습에서 과거의 내 모습을 사람들은 상상도 못한다. ㅠ.ㅠ 그런데 이젠 이런 내가 더 편하고 좋다. 나이를 먹으며 인생의 불필요한 부분들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시간을 허비하는 게 줄었고, 타인을 말이나 모습에 따라 평가하지 않게 됐으며, 군중 속에서 눈에 띄는 사람보다 군중을 홀로 마음 깊은 곳에 품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도 생겼다. 앞으로 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언젠가 한 토크쇼에서 이제 막 삼십 대에 들어선 과거 아이돌 출신의 할리우드 스타가 한 말이 떠오른다. 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그 배우가 너무너무 멋지다고 생각했다.


"I think I'm still growing up like a big 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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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너 요새 왜 글고 다니니.. 무슨 일 있었냐? ㅠ.ㅠ;;
잘 늙는 거 정말 힘든 거라니까!!!

 

이 글은 2008년 1월 13일에 최초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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