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광개토대왕비의 진수를 찾아서 떠나기 전에 알아둘 것

구름산신작가 2021. 8. 26. 12:55
반응형

 

【내용】

비석은 대략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 고구려의 건국부터 광개토왕까지의 역사를 다룬 첫째 부분 (묘비 1면 1행 ~ 6행까지) 

2. 광개토왕의 정복 전쟁을 기술한 둘째 부분 (1면 7행 ~ 3면 8행까지)

3. 능비의 건립 및 수묘인에 관한 마지막 부분 (3면 8행 ~ 4면 9행까지)

 


【Pt. 1/3】 건국 역사와 광개토왕의 생애

 

아! 옛날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세우셨다. 왕은 북부여에서 나셨으며, 천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시다. 알을 가르고 세상에 내려오시니, 날 때부터 성스러우셨다. □□□□□□ 명(命)에 길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부여의 엄리대수를 지나게 되어 왕께서 나루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인 추모왕이다. 나를 위하여 갈대를 연결하고 거북이들이 떠올라라." 이 말씀에 따라 즉시 갈대가 연결되고 거북이들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강을 건너 비류곡 홀본 서쪽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세우셨다. (왕은) 왕위에 낙이 없자 (하늘로) 사신을 보내시니, 황룡이 내려와 왕을 맞이하였다. 왕은 홀본 동쪽 언덕에서 용의 머리에 서서 승천하셨다. 세자로서 고명(顧命)을 이어받은 유류왕은 도(道)로써 나라를 다스렸고, 대주류왕(대무신왕)은 왕업을 계승하여 단단히 하셨다.


【Pt. 2/3】 광개토왕의 정복전쟁

 

17세손에 이르러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 열여덟 살(391년)에 왕위에 올라 칭호를 영락대왕(永樂大王)이라 하셨다. (왕의) 은택은 하늘까지 적시고 위무(威武)는 온 세상에 떨치셨다. (왕이) □□를 쓸어 없애니 백성이 그 생업을 평안히 하였다.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윤택하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다. 하늘이 (우리 백성을) 어여삐 여기지 않아 서른아홉 살(412년)에 세상을 버리고 떠나셨다. 갑인년(414년) 9월 29일 을유(乙酉)일에 산릉(山陵)에 모시었다. 이에 비를 세우고 훈적을 기록해 후세에 알리고자 한다.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Pt. 3/3】 수묘인(묘지기))에 관한 규정 (일부)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이 살아계셨을 때 말씀하시기를 "선조 왕들께서는 원근 지방에 사는 구민(舊民)들만 데려다가 무덤을 지키고 청소를 하게 하였다. 나는 구민(舊民)들이 점차 고달퍼져 열악하게 될까 걱정이 된다. 때문에 내가 죽은 뒤 내 무덤을 지킬 자들은 내 스스로 돌아다니며 직접 데리고 온 한(韓)족이나 예(穢)족 들에게 수호·청소하는 일을 맡게 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말씀하신 대로 한족과 예족 220집을 데려오게 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수묘)법칙을 모를까 염려되어 다시 구민(舊民) 110집을 데려와 새로 온 사람들과 합치니 묘지기 호수가 국연(國烟)30집, 간연(看烟) 300집이 되어 모두 330집이 되었다.

 

경기도 구리시 교문2동 광개토대왕광장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 복제품


신묘년조 논란과 임나일본부설의 논란과 진실

일본 학자들은 광개토대왕비의 글자 몇 개를 증거로 들며 '왜가 4세기 중엽에 가야 지역을 군사적으로 정벌해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하고 6세기 중엽까지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라고 주장한다. 사실일까?

복잡한 학설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4세기의 기술력과 인구수로 섬나라가 바다 건너 대륙에 식민지를 개척해 150여 년간 통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고만고만한 구석기 수준의 원주민들끼리라면 모를까. 아니면 스페인과 잉카제국 정도의 문명 차이가 나면 모를까. 오히려 로마의 경우처럼 대륙의 제국이 섬나라인 영국을 지배하는 건 가능할지 모르지만. 영국이 프랑스나 네덜란드를 150년간 지배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나. 고구려, 백제, 신라가 오키나와 정도라면 모를까 어림도 없는 소리다. 만약 일본이 임진왜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도 150년을 통치하는 것을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도 150년이면 5세대에 해당하는데, 당시의 평균 수명으로 본다면 적어도 7~8세대는 족히 된다. 그러니 백 번을 양보해 4세기 한반도에 임나 본부가 있었다고 해도 그 후손들은 지금 대한민국 시민으로 월드컵 한일전에서 필승 코리아를 노래 부르고 있을 것이다. 

가끔 학자들 논쟁을 보면 상식에 위배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일부는 널드라서 그런 것 같고, 다른 일부는 알면서도 뭔가 사적인 이해타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특히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때 써먹었던 논리는 2021년인 현재 그 대부분이 논쟁거리 자체가 안된다. 자기들이 무슨 2천 년 전 예루살렘 내 땅이니 내놓으라는 유대인들도 아니고, 4세기에 조선을 통치했든 말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4세기 때 일을 갖고 원래는 한 뿌리다 뭐다 하는 소리는 쌍둥이도 세대 차이 난다는 21세기에서는 아무 쓸모 없는 논리다.

그런 논리라면 영국은 또다시 미국을 쳐들어가서 영미 합방을 하자고 할 것이요, 미국 역시 영국을 쳐들어가 미영 합방을 하자고 할 것이며, 독일은 또다시 오스트리아부터 네덜란드까지 다 쳐들어가서 하나의 국가를 만들자고 할 것이며, 족보가 온통 뒤죽박죽인 유럽은 서로가 서로를 다 쳐들어가도 될만한 '뿌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따지면 혼혈 천국인 미국은 전 세계 모든 나라를 다 하나로 통합해도 되겠네.

그리고 끝으로 중국. 동북공정으로 애 많이 쓰고 있는데,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공식 명칭이 코리아 아닌가. 코리아는 고려고, 고려는 고구려 후신 아닌가. 그럼 고구려의 왕은 누구의 조상인가. 클레오파트라가, 그녀가 속한 왕조가 헬라계 백인이었다고 해서, 누가 이집트의 왕조와 역사를 그리스의 역사로 편입 시키나. 이 역시 임나일본부설 못지않게 한심하기 짝이 없는 소리일 뿐이다.

그나저나 가만 보면 꼭 근현대사도 제대로 안 가르치는 나라들, 젊은이들이 역사는 고사하고 투표에도 관심 없는 나라들이 고대사 가지고 허구한 날 박 터지게 싸우더라.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반응형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로 르메이에르 빌딩과 피맛골의 역사  (0) 2022.07.01
달력, 점성술, 천문학의 문화사  (3) 2020.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