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달력, 점성술, 천문학의 문화사

구름산신작가 2020. 11. 30. 14:57
반응형

숫자와 문자의 중간 단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천체 역법은 다양한 고대 문명에서 발화하였다. 인류는 수렵, 채취 시절 이미 자연에는 어떤 규칙적인 변화의 반복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낮과 밤의 길이, 조수 간만의 차, 별자리의 움직임 등은 때론 목숨과 직결되는 중요한 지식이었다. 특히 인류는 지구 상의 많은 생명체가 자연의 움직임에 따라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알 수 있었고, 따라서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는 자연의 반복과 변화를 기록하며 예측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천체와 자연의 관찰에 의해 탄생된 역법이 신적 권위를 갖게 된 것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삶을 영위하는 시기가 결정되면서부터다. 또한 생과 멸이 반복되는 자연의 섭리를 예측할 수 있는 (혹은 예측할 수 있도록 교육받거나 교육을 허락받은) 사람은 제사장(timekeeper)의 권한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각 절기에 따른 다양한 숭배 의식을 인도했으며 신의 대행자 또는 화신이었다. 이러한 숭배 의식은 또한 모든 문화의 원형인데 고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건축과 풍습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컬처라는 말 자체가 컬트, 즉 숭배라는 어원에서 나온 사실이야 말로 이러한 사실을 가장 잘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유전자 지도를 펼쳐 놓고 바라보는 과학자들과 고대 밤하늘의 별자리를 펼쳐 놓고 바라보던 피라미드의 건축가들은 각각 무엇을 숭배하는 인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 

 

 

오늘의 운세, 띠별&별자리&타로 운세 무료ㅣ포춘에이드

포춘에이드는 오늘의 운세, 띠별 운세, 별자리 운세, 타로, 사주, 궁합, 신년운세, 전화 운세, 꿈해몽 등 다양한 무료 운세를 제공합니다.

www.fortunade.com

 

달력을 체계화하기 위한 필수 조건인 문자

 

- 초기 문자 원형의 시작 : 지금으로부터 약 5~6천 년 전.

 

- 초기 문자 발달의 장애 요인 : 원거리 통신을 누가 무엇 때문에 원하는가?

 

달력의 상고사

 

- 원시 시대 달력의 필요성 : 계절을 예측함으로써 사냥과 식량 채취, 즉 수렵생활에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 역사 시대 이전 이미 인류는 2,000여 년 간의 season-forecasting 경험을 축적한 상태.

 

- 자연을 관찰했다는 것. 먼 것을 관찰하는 외계인지 능력.

 

- 지식과 지혜가 병행하던 상태. 나이가 들며 축척된 지식은 지혜화 함.

 

- 자연의 변화 속에서 움직이고 명멸하는 생명의 현상을 통해 신비감을 체득.

 

고대 마야인의 달력

 

그들이 계산해 낸 금성의 일 년은 584일로서, 현대장비로 관측한 583.092일과 비교할 때, 오차율은 매일 12초에 지나지 않고 한 달에 단지 6분 정도일 뿐이다. 우리는 현대 천문장비로 관측하여 일 년이 365.2422일인 것을 알았지만 마야인은 이미 일 년이 365.2420일임을 계산해 냈다.

 

고대 이집트인의 달력

 

이집트에서는 일찍부터 나일강이 범람할 때면 동쪽 하늘의 일정한 위치에 시리우스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내어 태양력을 만들었다. 1년을 365일로 이루어진 12달과 연말에 5일을 더하는 식으로 달력을 만든 후 시리우스와 태양의 관계에서 1년 365.25일이라는 것을 측정했고, 이를 보정하기 위해 4년마다 1일을 더하는 윤년을 만들었다.

 

*피라미드

 

피라미드의 가장 경이로운 점은 방향에 있다. 각 능선은 거의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으며 그 각도의 오차는 진북에서 5분밖에 벗어나 있지 않아 우연한 배열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피라미드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해시계이고, 달력이고, 동시에 천문대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원래의 높이는 147m 지만 이 피라미드는 동지 무렵에는 80m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봄에는 그 길이가 거의 0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그림자의 길이를 이용하여 하루의 시간을 재고, 계절을 식별하고, 한해의 정확한 길이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별자리의 기원

 

별자리는 약 5000년 전 바빌로니아 지역에 해당하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살던 사람들이 양 떼를 지키면서 밤하늘의 별들의 형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BC 3000년경에 만든 이 지역의 표석에는 양 ·황소 ·쌍둥이 ·게 ·사자 ·처녀 ·천칭 ·전갈 ·궁수 ·염소 ·물병 ·물고기자리 등 태양과 행성이 지나는 길목인 황도를 따라 배치된 12개의 별자리, 즉 황도 12궁을 포함한 20여 개의 별자리가 기록되어 있다. 또 고대 이집트에서도 BC 3000년경에 이미 43개의 별자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바빌로니아 ·이집트의 천문학은 그리스로 전해져서 별자리 이름에 그리스 신화 속의 신과 영웅, 동물들의 이름이 더해졌다.

 

최초의 천문학

 

최초로 천체의 대한 기록을 한 사람들은 수메르인들이었다. 기원전 300년 무렵 설형문자를 쓸 정도로 높은 문화를 가진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땅을 덮을 정도의 큰 반구가 하늘을 차지하고 있으며, 땅과 이 반구 사이에 태양과 달, 그리고 별들이 떠다니며 바람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고 믿었으며 그 이외의 공간은 파도가 치는 바다로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었다.

 

*스톤헨지

 

스톤헨지는 원형의 유적으로 각각의 거석들은 모두 한 중심점을 향해 원형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바깥 도랑과 둑, 네모꼴 광장과 방향표시석인 힐스톤, 돌기둥을 세워 놓은 입석군, 중앙 석조물 등으로 이루어졌다. 방향표시석 힐스톤은 동쪽을 가리키는데, 그것도 하지에 해가 뜨는 방향을 정확히 나타내고 있다.

 

로마제국의 달력

 

고대 로마의 역법은 고대 그리스 태음력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되는데, 1년이 10개월, 총 304일로 되어 있는 태음력으로 나머지는 무시되었고, 한겨울의 61일은 아예 달력의 날짜 자체가 없었다. 9, 10, 11, 12월의 영어 단어가 라틴어로 7(Septa), 8(Octo), 9(Nova), 10(Deca)을 뜻하는 이유도 고대 로마의 달력은 10개월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460년경에 1년의 처음에 야누아리우스(January)를, 마지막에는 페브루아리우스(February)를 추가하여 12달로 만들었다.  그 후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이집트 정벌을 나갔을 때, 그곳 사람들의 편리한 태양력을 본떠서 1년을 12달 365일, 4년에 한 번씩 윤년을 두는 율리우스력을 제정하였다. 7월은 카이사르의 생일이 있는 달이라서 그의 이름을 본떠서 July라고 부르게 되었고 8월은 그의 조카인 아우구스투스 황제(=옥타비아누스)의 생일이 있어서 August로 부르게 되었다. 한편, 7월은 큰달인 데 비해 8월이 작은달이 되자 이에 아우구스투스가 불만을 느껴서 자신의 달인 8월마저 큰 달로 만들었기 때문에 애초 마지막 달이었던 2월은 애초의 29일에서 하루가 더 줄어서 평년에는 28일로 되었다.

 

동지와 세계문화

 

대설 15일 후, 소한 전까지의 절기로, 양력 12월 22일 경이 절기의 시작일이다. 음력으로는 11월 중기이다.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이 적도 이남 23.5°의 동지선과 황경 270°에 도달하는 12월 22일 또는 23일을 가리킨다. 동양의 태음 태양력에서 역의 기산점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동지는 북반구에서는 태양이 가장 남쪽에 이르는 남지 일이며, 태양의 남중 고도가 1년 중 제일 낮아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반대로 남반구에서는 낮이 가장 길고 밤이 제일 짧은 하지가 된다. 이때를 기하여 태양이 하루하루 북으로 올라와 낮이 길어지기 때문에 옛날에는 동지를 중요한 축제일로 삼았으며, 특히 태양신을 숭배하던 페르시아의 미드라교에서는 12월 25일을 ‘태양 탄생일’로 정하여 축하하였다. 이 미드라교의 동지제가 로마로 넘어가 크게 유행하였고, 4세기경부터 현재 기독교의 크리스마스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도 동지를‘다음 해가 되는 날', 또는 '작은설’이라 해서 크게 축하하는 풍속이 있었다. 궁중에서는 이 날을 원단과 함께 으뜸 되는 축일로 여겨 군신과 왕세자가 모여 연회를 베풀었으며, 해마다 중국에 예물을 갖추어 동지사를 파견하였다. 민가에서는 붉은팥으로 죽을 쑤는데  팥죽 국물은 역귀를 쫓는다 하여 벽이나 문짝에 뿌리기도 한다. 그밖에 고려 ·조선 초기의 동짓날에는 어려운 백성들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절기행사의 기원에 나타나는 공통점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전통 행사는 모두 절기와 관계가 깊다. 이슬람의 라마단에서부터 우리네 추석까지 그 대부분은 자연숭배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왜 인류는 절기를 숭배했을까? 그 답은 간단하다. 낮과 밤이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모두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메타포다.

 

오늘날 별자리는 GPS 시스템으로 대체되고 생명과 부활을 주재하던 태양은 현란한 불빛에 의해 밀려났다. 농사를 짓지 않으니 추석이 생경하고 어떤 곡식이나 동물이 언제 탄생해 언제 죽는지 알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절기행사가 소멸되어가는 것도 당연하다. 생의 메타포가 테크놀로지에 의해 증발돼 버린 것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경기도 절기 행사와 그에 따른 문화 축제의 한 변형된 모습을 보여준다. 잘 알다시피 고대 올림픽은 모두 전쟁에서 쓰이는 기술을 집대성한 것으로 우승자는 실력뿐 아니라 승리의 여신의 가호마저 차지한 것으로 이해돼 주변 국가에 우월성을 보여주는 제신 행사였다. 월드컵 역시 고대 액운을 차내어 상대방의 성을 무너뜨리는 개념으로 중세 전쟁놀이의 일환이었던 것이 오늘날 미디어에 의해 전 지구적 오락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아메리칸 풋볼 리그 역시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절기 개념에서 발전한 것임을 생각해 볼 때 현대의 절기 행사는 참여보다는 관전이 주가 되는 간접적 축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민족의 천문학 자취

 

첨성대 

 

신라 선덕여왕 때에 새워진 첨성대는 천문대로써의 역할뿐만 아니라 네모난 기단석과 둥근 몸체는 각각 땅과 하늘을, 제작에 사용된 360여 개의 돌은 1년의 날수를 나타내는 등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운관과 관상감
 

고려시대에 천문, 역수, 기상 등의 국사를 맡아보던 서운관은 조선 건국 후에도 계승되어 오다 세종 때 관상감으로 개칭되었다. 관상감 자리에는 화강암으로 쌓아 올려 만든 해시계대인 일영대라는 유적이 남아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조선의 첫 임금 태조 4년(1395년)에 제작되었으며 돌에 새겨진 천문도이다. 돌에 새겨진 천문도 중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것으로 모두 1,464개의 별들이 새겨져 있으며 설명문에는 작성 경위, 작성에 참여한 학자들의 성명과 관직 등의 구체적인 내용과 함께 고구려의 석각 천문도에 대한 기록도 있다.


해시계

 

조선시대 대표적 해시계인 앙부일구는 세종 때 만들어진 반구형의 해시계로서, 24절기와 시각표시 이외에 당시 한양의 위도를 나타내는 '漢陽北極高三十七度二十分 (한양북극고삼십칠도이십분)'이란 석문이 적혀있다.


간의 

 

세종 14년(1432년)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기 위해 나무로 간의를 제작하여 한양의 위도를 측정한 후 청동 간의를 만들었다. 간의는 행성과 별의 위치인 적경과 적위의 정밀 측정은 물론 고도와 방위 측정, 낮과 밤의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었던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천문관측기기이다.


혼천의 

 

혼천의는 하늘에서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는 기본적인 관측용 기기로 중국에서 기원전 2세기경 처음 제작되었다. 조선시대 최초의 혼천의는 세종 15년(1433년)에 제작되었는데 이것은 관측용 혼천의를 만들기 위한 소규모 모형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에 이천, 정인지, 김빈이 제작에 참여하여 관측용 혼천의를 만들어 간의대에 설치하였다.

 

가장 친절한 타로 웨이트 카드 세트

COUPANG

www.coupang.com

파트너스 활동을 통해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