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영화 또는 갱스터 무비는 가장 미국적인 장르 중 하나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해왔다. 그 이유는 시대성 때문이다. 1920년대 후반에 등장한 이 장르는 영화에 사운드가 도입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고 1930년대 초가 되면 전성기를 구가한다. 훗날 이 장르의 고전이 될 세 편의 영화를 잠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리틀 시저 Little Caesar / 머빈 르로이, 1930
- 공공의 적 The Public Enemy / 윌리엄 A. 웰만, 1931
- 스카페이스 Scarface / 하워드 혹스, 1932
이 당시는 주류의 생산, 판매, 수송을 금지한 금주법(1919-1933)이 시행되고 있었고, 경제 불황으로 인한 실업과 기업의 도산이 만연하던 대공황(1929-1934)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두 가지 요소는 영화 속 갱스터들을 신화적인 존재로 만드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금주법은 사실상 강제하기 어려웠는데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술을 가져다주는 갱들은 마치 디오니소스의 전량사 같이 여겨졌고, 공권력과 술래잡기를 하는 그들의 활극은 세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좋은 소재였다.
갱들은 숫적으로나 무장 수준으로나 경찰을 능가하기 시작했고 엄청난 돈을 벌어들여 상상을 초월하는 사치를 부리기도 했다.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술을 금지하는 엉터리 법에 맞서 공권력과 싸우며 신의 물방울 알코올을 가져다주는 그들은 현대판 로빈후드가 되었고, 비싼 옷을 잘 차려입고 손에는 기관총을 든 모습은 마초-신사라는 터프하면서도 매력적인 남성미를 뿜어냈다. 게다가 그들 자신을 '패밀리'라고 부르며 자기들끼리는 가족 단위로 단결하는 것은 미국의 수많은 이민자들에게 어필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모든 것에 힘입어 갱스터 무비는 흥행 보증수표가 되었고, 시나리오 작가들은 세간에 떠도는 갱들에 관한 소문이나 혹은 경찰로부터 얻어 들은 이야기, 혹은 직접적인 취재를 통해 새로운 영화 대본을 쓰기에 바빴다. 그리고 이런 노력 덕분에 당시의 많은 갱 영화들이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갱스터 무비, 조폭영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유의 영화는 당시의 사회상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이야기의 배경이 도시라는 점, 그 도시의 어두운 면(자본과 폭력 등)을 드러낸다는 점,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다양한 혹은 감춰진 삶을 조명한다는 점 등에서 그렇다. 또, 정작 갱들의 삶이 단순한 흑백논리로는 재단할 수 없다는 점에서 관객 동일시를 불러일으키기에 좋다. 누구나 현실에서는 모순된 삶을 살아가는 부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장르의 영화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고발적인 측면도 갖고 있다. 한 사회가 얼마나 부패했는지, 무엇이 거짓인지, 어떤 프로파간다와 스펙터클로 대중을 현혹하는지, 도시인들은 얼마나 속물들인지 등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미국의 경우 이런 폭로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것이 있다면 바로 '아메리칸드림'이다. 누구나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 귀족과 왕 같은 계급이 없는 사회라는 미국의 캐치프레이즈는 경제 대공황을 지나며 그 추한 본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왕정체제와 같은 계급은 없지만 대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철저하게 위계화된 사회에서 일개 필부가 어떻게 아메리칸드림을 이룰 수 있을까? 갱스터 영화에 따르면 그 답은 분명하다. 이미 그 꿈을 이룬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그들이 예전에 썼던 바로 그 방법. 바로 '폭력과 반칙'이다. 갱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거의 모두 프롤레타리아 계급 출신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도시. 하지만 그곳에 붙어 있어야 그나마 일거리가 있는 도시에서 어떻게 자본을 축적할 수 있을까? 결국 그들이 선택한 첫걸음은 밀수, 밀매, 절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폭력과 뇌물이 사용된다.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의 아메리칸드림 초기의 역사를 보여준 영화 '갱스 오브 뉴욕' (상), 그리고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의 세대를 걸친 아메리칸드림 과정을 보여준 영화 '대부' 시리즈
아름다운 아메리칸드림으로 가는 길은, 실제로는 야수로 가득한 약육강식의 길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기 때문에 갱 영화의 주인공은 끝에 가서 죽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치적 올바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드림이 엉터리 신화라는 것을 알아낸 주인공이 반칙을 써서 그 꿈을 이루는 영화를 모든 미국인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또 만약 그렇게 한다고 해도 오히려 시민들이 야유를 퍼부을 수도 있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꿈이 훼손되기 때문에. 따라서 영화는 주인공의 이카루스처럼 실패하고 목숨을 잃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된다. 그런데 또 한 번 아이러니하게도 관객들은 이런 주인공의 모습에 측은함을 느낀다. 만약 죽지 않고 성공했으면 비난했을 텐데도. 그렇게 조폭영화는 사회의 실체를 폭로하고 다시 봉합(혹은 봉인)한다. 관객들은 그저 남자다운 격정과 액션, 끝에는 비극으로 끝나는 누아르 영화 한 편을 '잘 봤다'라고 생각하며 다시 그들의 위치로 돌아간다. 아메리칸드림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돌아가게 하는 작은 톱니바퀴 자리로.
갱스터 영화는 도시형 웨스턴(서부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규칙이 명확한 서부영화와 달리 갱 영화에는 죽음을 빼고는 별 규칙이 없다. 대신 출세의 욕망에 불타는 주인공과 이를 저지하려는 통제(공권력 혹은 다른 폭력 집단에 의한) 사이의 대립이 있을 뿐이다. 주인공은 통제당하는 대신 짧고 굵은 삶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조폭영화 특유의 숙명적 아우리가 나타난다. 그리고 관객들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폭력이 난무하는 '무규칙 도시 서바이벌 게임'을 목격하게 된다.
비록 내러티브에 규칙이 없다고 해도 갱 영화는 고도로 스타일리시한 장르다. 도시라는 세트장 (가상이든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이든), 고급 의상, 비싼 자동차, 그리고 그들의 폭력을 지원하는 최신형 개인 화기 등등 도상학적인 요소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등장인물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교훈적 메시지를 위해 마지막엔 비참하게 죽어야 하지만 그전까지는 폭력과 화려함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쥐고 흔든다. 왜냐하면 비극적·교훈적 최후를 맞이하기 전까지 그는 영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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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은 평소 그들에게만 더 가혹하고 불리하게 적용되는 각종 사회적 압박(법률을 포함한)을 마음껏 가로질러가는 무법자 주인공을 보며 쾌감을 느낀다. 그것은 이미 죽기로 각오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 혹은 권능으로, 이 두 가지를 실행하면서 점차 주인공과 관객들은 무엇인가 깨닫게 되는 자기 인식의 과정을 겪게 된다. (예컨대 '내가 사회적 약자만 아니라면 이만큼의 힘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라는)
그러나 이 모든 동일시의 클라이맥스는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이 경찰의 총탄을 대신 맞고 그의 품에서 죽어갈 때다. 죽음을 대가로 모든 사회적 제제를 벗어난 주인공이 영웅으로 승화하여 함께 신계로 끌어올리려 했던 사랑하는 대상이 자신보다 먼저,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는 대가를 치르는 순간, 그보다 더 극적인 순간은 있을 수 없다. 이런 장면은 무법자에 대한 동정과 이해심까지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조폭은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악이라는 메시지는 관객에게 전달하면서도 그 안에는 결국 '개천 출신으로 용이 될 순 없다'라는 실제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이 내재되어 있다.
미국 갱스터 영화의 경우 공황으로 사회 분위기가 뒤숭숭해지자 더 이상 이런 영화를 만들지 말라는 정치적 압박이 생겼다. 미국 영화 검열기관인 헤이즈 오피스는 1934년 일명 헤이즈 코드라는 영화 제작 윤리 강령을 강제함으로써 한창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갱 영화를 주저앉히려고 했다. (따라서 진짜 갱스터 무비를 보고 싶다면 1934년 이전의 것을 보는 게 좋다.)
하지만 영화사들은 이 수익률 좋은 장르를 포기할 순 없었고 대신 우회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탐정/형사/스릴러물이다. 갱들의 폭력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법과 질서를 앞세운 것이다. 즉 갱스터의 폭력성은 그대로 두고 영웅 이미지만을 빼앗아 탐정 혹은 형사에게 위임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영화 '조커'는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다.)
또한 헤이즈 코드의 간섭은 필름 누아르로 전이되어 이전까지 갱스터가 보여주던 가학증은 위기에 처한 주인공 탐정(남성)의 죄의식과 불안으로 이행되었다. 또, 이런 탐정이 등장하는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영화에서 모호한 공간, 부패가 만연하고 법이 죄를 응징하지 못하는 도시는 현대 사회를 반영한다.
영화에서 (사설) 탐정은 공식적인 법 바깥에 존재하며, 그런 장점(?)을 살려 자신만의 방법으로 법이나 공권력이 손대지 못하는 범죄를 해결하고 악당을 응징한다.
이들 탐정들은 대부분 거칠고 가난한데 여기서 가난은 일종의 청빈함과 비슷한 맥락으로 탐정이 돈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대로 세계적인 재벌의 숨겨진 캐릭터가 탐정인 경우 역시 금권, 즉 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갱스터 / 조폭 영화와 탐정 / 누아르 영화의 차이점 중 하나는 여성의 역할과 그 비중인데 전자에서 여성은 수동적인 반면, 후자에서는 소수이긴 해도 여성 탐정이 등장하며 (사라 파레츠키 Sara Paretsky 작품) 조연인 경우에도 갱 영화에서보다는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또 종종 살인을 저지르거나 저지른 것으로 의심받아 형사의 조사를 받기도 한다. (영화 원초적 본능) 하지만 이런 여성 캐릭터들 대부분이 여전히 '아름답고 위험한 팜므파탈'이라는 고정관념의 한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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