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금 vs 은, 오즈의 마법사에 숨겨진 투자의 비밀

구름산신작가 2021. 3. 3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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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국립 어린이 청소년 도서관'에 처음 갔던 날, 그때 느꼈던 감동은 정말 대단했었죠.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친구가 '책을 안 사고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라는 거예요. 당시엔 도서관의 존재를 몰랐었기에 말만 듣고도 엄청 깜짝 놀라서 따라나섰죠. 그땐 다들 '국기원 도서관'이라고 불렀어요. 

 

도착해보니 정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어린이책이 다 있는 거 같았어요. 그런데 더 놀랐던 건 책을 그냥 빌려도 준다는 거예요. 꿈같았죠 진짜. 그때 처음 빌렸던 책이 바로 '오즈의 마법사'였어요. 그림이 하나도 없이 글씨만 있는 책인데도 재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제목에 마법사라는 단어가 있어서 빌렸죠. 그리고 집에 와서 단숨에 읽었어요. 그때 처음 알게 되었죠. 글씨만 있는 책인데도 재밌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중에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보게 되었어요. 1998년과 2007년, 미국 영화 연구소에서 선정한 '100대 영화'로도 뽑혔던 영화로 194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받기도 했죠. 그리고 더 세월이 흘러 아내와, 아이와, 온 가족이 함께 처음으로 본 뮤지컬 공연이 '위키드'였어요. 그렇게 오즈는 오래전 11살이었던 20세기의 한 소년으로부터 21세기의 한 소녀에게까지 이어지게 되었어요. 

 

더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되었죠. 오즈의 마법사에는 깊은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때부터 오즈는 다시 중년이 된 오래전 그 소년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어요. 

 

오즈의 마법사 초판본 커버

 

이야기는 캔자스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 소녀 도로시는 집채로 토네이도에 휘말려 마법의 나라 오즈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 그리고 겁쟁이 사자를 만나죠. 그리고 이들은 함께 여정을 시작합니다. 목적지는 위대한 마법사 오즈가 살고 있다는 에메랄드 시티. 이 이야기는 원래 1900년 라이먼 프랭크 바움(Lyman Frank Baum)이 쓴 소설 <Wonderful Wizard of OZ>가 원작이에요.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1800년대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금본위 제도(Gold Standard)'를 경제 우화의 형식 안에 감춘 것이었죠. 

 

 

도로시가 삼촌, 숙모와 함께 살고 있던 농장 캔자스는 미국 중부에 위치하고 있어요. 당시 중부에서 서부까지는 여전히 농업 중심 지역이었죠. 또 미국의 가장 보편적인 시민이 살던 곳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도로시와 삼촌 부부는 일반 미국 시민을 묘사한 캐릭터인 거예요.

 

자, 그런데 캔자스의 오른쪽, 그러니까 동부 지역에서는 금융업이 발달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같은 나라 안에 농업국가 vs 공업+금융업 국가가 반쪽씩 땅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었던 거예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떤 일이 생기게 될지는 뻔한 거 아니겠어요? 뼈 빠지게 농사지어서 농사짓는데 들어간 대출금 갚는 것도 불가능한 지경까지 이르게 되는 거죠. 물가와 지대는 동쪽 금융가들이 다 올려놓고, 정작 그들까지 먹여 살리는 식량은 서부 쪽 농부들이 소작농처럼 일하게 돼버린 거예요. 그렇게 살기 지긋지긋해서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 목숨 걸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온 것인데 이제는 같은 나라 안에서 전과 똑같은 삶을 살게 돼버린 거죠. 

 

거기에 지속적인 물가 하락, 즉 '디플레이션(Deflation)'으로 인해 화폐가치가 상승하면서 서부 중서부 농민들은 사실상 고리를 뜯기게 되어 갖고 있던 땅까지 다 팔아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허수아비는 바로 이런 농민들을 대표하는 캐릭터였던 거예요. 

 

 

그런데 디플레이션으로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들이 또 있었어요. 네, 그래요. 바로 공장에서 일하는 공장 노동자들 역시 큰 위기를 맞게 되었던 거예요. 당시 미국의 실업률은 무려 18%에 이르렀어요. 자고 일어나면 물건값이 떨어지니 사람들은 '오늘 사지 말고 나중에 사자'라는 생각을 하겠죠? 그러니까 물건이 안 팔리죠. 물건이 안 팔리니까 생산공장은 일거리가 없죠. 그래서 거리엔 실업자들이 넘쳐나게 되었고, 바로 이 공장 노동자를 묘사한 캐릭터가 깡통 나무꾼이에요.

 

 

그럼 에메랄드 시티는 뭘까요? 힌트는 에메랄드의 색깔이에요. 혹시 무슨 색인지 기억이 나세요? 맞아요. 초록색이죠. 우리나라에서 일명 '배춧잎'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거, 네, 돈이에요, 돈! 그 돈줄을 쥐고 기계를 작동시켜 마법(?)을 부리는 곳은? 바로 워싱턴 D.C. 에 있는 정부와 정치가를 뜻하는 거예요. 작가는 오즈의 마법사가 경제동화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여기저기 힌트를 많이 꽂아놨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오즈라는 이름이에요. OZ. 온즈. 어디서 많이 들었죠? 맞아요. 금 1온즈, 은 1온즈. 단위죠, 단위. 그런데 에메랄드 시티 궁전에서 귀금속을 초록색 종이로 바꾸는 희한한 마술을 부리는 거예요. 일종의 장난질이랄까...

 

예나 지금이나 '돈으로 돈 벌기'가 다른 어떤 것보다 앞도적으로 수익률이 높다면 '망할 때가 다 됐다'라는 징후예요.

 

이제 에메랄드 시티로 향하는 '노란 벽돌'의 의미를 알아볼까요? 벌써 눈치채셨겠지만 그건 '금본위 제도'를 뜻해요. 금본위 제도는 쉽게 말하면 돈이 지니는 가치의 근거를 금에 둔 거죠. 예전에 미국 은행은 창구에서 달러를 주고 금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바꿔줬어요. 그렇게 한정적인 재화인 금을 화폐가치의 기준으로 두면 장점은 돈=금이라는 등식이 성립해서 안정감을 주고, 또 함부로 돈을 찍어낼 수 없어서 갑자기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좋은 금본위 제도의 문제점은 돈을 '더' 찍을 수 없기 때문에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량이 줄어든다는 거예요. 즉, 돈 자체가 귀해진다는 거죠. 지금으로 예를 든다면 5만 원권처럼요. 전부 부자들이 어딘가 꼭꼭 쟁여두고 당최 볼 수가 없잖아요?

 

금융업 규제를 풀어서 돈이 돈을 벌게 해 주니까, 그것도 압도적으로 쉽게 더 많이 벌게 해 주니까 돈이 있는 사람 금고에만 쌓여가고, 시중에는 돈이 금처럼 귀해져 가치가 마구 올라가니까 상대적으로 물건의 가치는 계속 떨어지는 거예요. 당시에는 이런 디플레이션에 대해서 잘 몰랐던 거죠. 뭐 지금도 알지만 별 대칙이 없긴 하지만...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먼치킨'들은 도로시에게 옐로 브릭스, 즉 황금색 블록을 따라가면 에메랄드 시티가 나온다고 알려줘요. 그들은 지금처럼 금본위 제도가 계속 유지되길 바라는 세력인 거죠. 바로 동부의 금융자본가들을 상징하는 거예요. 

 

 

결국 돈이 점점 귀해지고 물건 가격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미국 경제와 사람들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자 '돈을 더 찍어서 풀어야 한다'라는 주장이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해요. 하지만 무엇을 근거로? 당시엔 지금처럼 아무 실물 근거 없이 그냥 돈을 찍는다는 건 상상도 못 할 때거든요. (사실 지금도 좀 미친 짓이긴 하죠.) 

 

그래서 금대신 떠오르게 된 것이 바로 은이에요. 그리고 이런 여론에 힘입어 이른바 '프리 실버(free silver)'를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던 정치가가 있었으니 변호사 출신의 대통령 선거 후보자 '제닝스 브라이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이라는 사람이에요. 

 

그는 1800년대 후반 대통령 후보로 여러 번 출마를 했는데요, 특히 1896년과 1900년 선거 캠페인 당시 미국 화폐의 금본위 제도를 은본위로 바꿔 돈을 더 찍어서 농민과 노동자에게 풀자는 주장을 해요. 하지만 대통령 선거에 떨어지고 말아요. 이제 겁쟁이 사자가 누구를 묘사한 것인지 아시겠죠? 오즈의 마법사는 바로 이때, 그러니까 제닝스 브라이언이 은본위 제로를 선거 공약으로 걸고 대선에 출마하던 기간에 쓰인 소설인 거예요. 작가는 그가 좀 더 위풍당당하고 용감하게 선거전에서 싸워 승리를 쟁취하길 바랐던 것 같아요. 그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지지자들을 위해서요.

 

 

이제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갑니다. 오즈가 엉터리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도로시 일행. 그래도 나쁜 마녀를 물리치고 각자 원하던 것을 얻게 돼요. 지푸라기로 머리가 가득 차 있어서 자신조차 바보라고 생각했던 허수아비는 똑똑함을 인정받아 학위를 받고, 양철 나무꾼은 심장이 아닌 '근로시간 준수'를 위한 시계를 얻게 되고, 울보 사자는 (대통령 당선을 뜻하는) 메달을 얻게 되죠. 하지만 도로시는 궁극적으로 캔자스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일상을 살아가는 게 원하는 건데, 그 꿈을 어떻게 이루었는지 기억나세요? 맞아요. 처음부터 답은 눈앞에 있었던 거죠. 신고 있던 루비 구두의 뒤축을 세 번 부딪히며 '내 집 같은 곳은 없어'를 외치면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원작 소설에 보면 이 루비 구두가 실은 은으로 된 구두라는 거. 이제 딱 보이죠? 은본위 제도만이 모두를 다시 원래 있던 삶의 현장으로, 일상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해결책이라는 거죠.  

 

Photo by Scottsdale Mint on Unsplash

 

그리고 시대는 흘러 흘러 더 이상 금도, 은도, 화폐의 가치 기준이 아닌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른바 'Thin Air'라고 하는, 그냥 얇은 공기? 아무 근거 없이 돈을 찍어내는 시대가 된 거죠. 역사를 보면 이런 상황이 되면 늘 그 시대의 문명권이 끝장났어요. 이번엔 다를까요? 알 수 없죠. 역사는 늘 반복되는 것과 새롭게 길이 열리는 것 사이를 돌며 회전계 단식으로 발전하니까요. 다만 한 가지. 화폐를 무한정 찍다 보면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고 - 물론 이 역시 막을 수 있다는 이른바 'MMT'라는 이론이 등장했지만 - 그러다 보면 역시 불안감으로 인해 금값이 오르게 마련이죠. 

 

그런데 금값이 너무 올랐죠. 그리고 정말 극한의 경제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금이든, 은이든 귀금속류는 국가에서 제한을 가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은의 경우, 특히 그것이 실제로 어느 나라에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동전이라면 그건 현금이고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가장 마지막에 제한을 받게 된다죠? 그리고 외환으로 은행 가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고요. 따라서 만약 투자가 안정성과 수익률 두 가지 모두를 잡은 것이라고 믿는다면 답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오즈를 통해서 풀어본 금 투자, 은 투자 이야기는 이제 이쯤에서 마무리합니다. 여기까지 다 읽어주셨다면 정말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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