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군사독재 시절, 극장 상영 금지 전쟁영화는?

구름산신작가 2021. 8. 2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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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1979년에 개봉한 미국의 전쟁 영화다. 원작은 조지프 콘래드의 1899년 소설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인데, 이것을 영화 '대부'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각색하여 영화화한 작품이다. 플래툰, 풀 메탈 재킷과 더불어 베트남 전쟁을 다룬 3대 걸작으로 손꼽힌다. 제작에만 3년 이상이 소요되어 연기자들이 갈수록 성숙한 연기를 보여주는 뜻밖의 수확을 거둔다. 미국 영화 연구소(AFI)가 선정 100대 영화 중 하나로, 1979년 칸 영화제에서 영화 '양철북'과 함께 황금종려상을 공동 수상한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만 정작 오스카 트로피는 촬영과 음향 부문에서 거머쥔다. 

 

 

줄거리

 

1969년 적진 깊숙한 곳에 침투하여 특수임무를 마치고 사이공 기지로 귀환한 벤저민 윌러드 대위는 임무 중 스트레스, 일명 PTSD 증세로 시달린다. 이처럼 멘탈이 엉망이 된 그를 사령부로 끌려온다. 

 

사령부에서는 맛이 간 월러드에게 새 임무를 내린다. 바로 '커츠 대령을 암살하라'는 것.

 

커츠 대령이 누구냐. 자신의 부대를 탈영한 뒤 내륙 깊숙이 숨어들어 자신의 왕국을 세우고 있는, 차원이 다르게 맛이 간 놈이다. 사령부는 윌러드에게 경비정 한 대를 주고 '넝' 강, 넝 리버를 거슬러 올라가 캄보디아 국경까지 접근해서 커츠 대령의 사이비 왕국에 잠입하라는 미션을 내린다. 치료를 해줘도 모자란 판에 이 무슨 이이제이인가...

 

이후 윌러드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온갖 전쟁의 광기를 자신의 시선으로 영화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시놉시스 (스포일러 포함)

 

강을 따라 올라가던 윌러드 일행은 베트콩 마을을 공습하고 있던 헬리콥터 부대를 만난다. 킬고어 중령과 그의 부하들은 막강한 화력을 믿고 장난처럼 전쟁을 한다. 그들의 공습에 베트콩 마을 주민들은 처참히 죽어나간다. 심지어 두 번째 마을은 전략적인 이유가 아닌, 서핑하기 딱 좋은 파도가 있다는 이유로 네이팜탄을 쏟아붓는다. 베트남의 자유를 위해 싸운다는 미국의 선전은 어디에... 

 

킬고어 부대 다음으로 마주한 곳은 위문공연 현장이다. 병사들은 쇼걸들의 위문공연으로 죽음의 공포를 잊으려고 난리 부르스를 춘다. 하지만 흥분한 병사들이 무대에 난입하자 쇼걸들과 단장은 헬리콥터를 타고 급히 현장을 떠나고, 텅 빈 공연 현장은 환호를 대신해 공허가 빈자리를 채운다. 생 발광을 한다고 전쟁터의 공포와 공허가 어디가랴... 

 

윌러드 일행은 캄보디아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두 렁' 다리를 밤중에 지나간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부대는 베트콩과의 계속된 교전으로 체계가 엉망진창이다. 윌러드는 적들에게 기관총을 갈겨대는 병사에게 '여기 지휘관이 누구냐'라고 묻는데, 그러자 그 병사는 의아한 표정과 함께 '대위님 아닌가요?'라고 답한다. 한마디로 뭐가 뭔지, 누가 누군지도 모른 채 적이 있는 방향을 향해 기관총을 쏴대는 것이었던 것이다. 무서우니까. 살아야 하니까. 이게 정말 전투 맞나...

 

베트콩과 교전 중 전사한 신참을 뭍을 곳을 찾던 윌러드 일행은 프랑스인들을 만난다. 그들은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이던 시절부터 농장을 경영하던 집안사람들로, 베트남 독립 이후에도 프랑스로 돌아가길 거부하고 오히려 자경단을 결성해 농장에 다가오는 남북 베트남군 모두에게 총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이 우리 고향이다'라며 자기들이 지배할 때는 모두 행복했다는 적반하장을 늘어놓는다. 어쨌든 그들 역시 그동안 여럿 죽어 나갔다. 적반하장 똥고집의 대가로... 

 

하나둘씩 대원일 잃어가며 계속 강을 거슬러 올라간 일행은 마침내 정글 속 커츠 대령의 본거지에 도착한다. 커츠 대령은 이곳에서 교주 같은 존재로 군림하고 있다. 그에게 포로로 잡힌 윌러드는 살아있는 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는 축제가 벌어지는 틈을 타 커츠를 - 마치 조금 전 축제에서 소를 도축하는 것처럼 - 암살(내지는 도살)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자 현지 부족민들은 마치 커츠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엔 윌러드를 신적 존재로 추앙한다.  

 

참고로 여기서 '강'은 '시간' 혹은 '역사'를 상징한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베트남의 역사라고 생각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베트남의 과거는 정글 속 원주민이라는 얘긴가? 그보단 오히려 인간에 내재하는 '폭력의 기원'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게 아닌가 싶다. 

 

 

평가

 

이 영화의 세계관은 영화가 시작되는 시점 이전, 미군 그린베레 장교 월터 커츠 대령이 의문의 편지를 사이공의 미군 사령부로 보내고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기 위해 베트남 정글로 자취를 감춘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영화는 커츠를 제거하기 위해서 파견된 윌러드 대위의 독백과 함께 마치 '강 위의 로드 무비'처럼 인간사냥을 떠난 윌러드 일행의 여정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베트남전을 진지하게 다루는 영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도 대표적인 반전 영화로 꼽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를 만든 코폴라 감독은 이 영화가 반전영화가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반전영화는 폭력에 대한 욕망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이 영화가 반전영화라고 생각했고, 이 때문에 박정희 정권 말년부터 전두환 정권에 이르기까지 무려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대한민국에서는 극장 상영이 금지되었다. (필름을 들여오는 것 자체가 금지였다.) 미국의 요청(혹은 자진해서)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대한민국에서 전쟁의 참상이 아닌 전쟁의 광기와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보여주는 영화를 상영하도록 허락해줄 리 만무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인 『어둠의 심연』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저 흥행을 목적으로 한 대중소설로 서구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정글 속 원주민들의 야만적이고 미개한 세계와 그곳에서 공산주의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의 모습을 폭력적이고 으스스하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까? 

 

 

여담

 

원작자 조지프 콘래드는 당시 러시아 제국령에 속했던 시기에 출생한 폴란드계 영국인이다. 벌써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그가 쓴 '어둠의 심연'은 한 선원의 썰로 시작된다. 그는 템즈강에서 다른 동료 선원들한테 콩고에서 겪었던 일을 들려준다. 그가 전하는 콩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커츠라는 인물과, 원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토착민들을 길들이려는 서구인의 광기에 찬 모습을 듣다 보면 이건 도대체 자칭 문명인이라는 자들이 진짜 문명인이 맞나 싶어 진다. 이처럼 저자는 소설 속 화자의 입을 빌어 '백인우월주의와 제국주의의 야만성'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작가 콘래드의 인생을 알게 되면 그의 뜻한 바가 더욱 확실해진다. 폴란드 귀족 집안의, 독립운동가 아들로 태어난 그의 삶은 소설보다 훨씬 소설 같을 정도로 파란만장했으며 그 역경의 대부분은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침략 전쟁과 식민지 약탈 때문이었다. 그가 겪고 목격했던 일들을 읽기만 해도 당시의 역겨운 서구 문명인들의 모습에 구토가 날 지경이 된다. 

 

이런 면에서 콘래드의 소설을 영화화한 코폴라 감독의 작품은 뭔가 마무리가 상당히 아쉽다. 원작과 달리 코폴라의 작품에선 폭력이 미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인간의 원초적 야생성으로 그려지며, 그런 차원에서 찬양까지는 아니더라도 모종의 숭고미가 느껴지게 한다. 그러니 본인 스스로도 반전 영화가 아니라고 했겠지만...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화를 반전영화로 이해했고, 또 그런 이유로 군부 독재정권하의 대한민국에서는 상영이 불가능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6월 항쟁이 있은 다음 해인 1988년, 개봉한지 10년이 다 돼서 '시대성'이라는 김이 다 빠지고 난 다음에야 대한민국에서도 마침내 수입 허가를 받아 명보극장에서 개봉을 하게 되었다. 이 영화의 이름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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